항소심에서 무죄를 이끌어낸 사례
- 분류 : 형사
- 작성일 : 24-10-28 11:30
- 조회 : 124
항소심에서 무죄를 이끌어낸 사례
한국의 법정에서 기소된 피고인이 무죄가 나올 가능성은 통계적으로 1%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는 인터넷에서 당장 대한민국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금방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통상 췌장암 4기에 걸리면 다 죽는다고 생각하는데 췌장암 4기 생존확률이 5%는 되니까 췌장암 4기 환자 생존확률의 5분의 1정도 되는 것입니다.
검사의 기소에 관한 한국의 사법 제도는 일본과 흡사한 점이 많은데, 일본 닛산의 유명 CEO 카를로스 곤은, 일본에서 가장 비싸고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되었지만, 1%의 확률에 승부를 거는 대신 가중 처벌의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적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기소한 피고인이 무죄라는 것은, 체포한 경찰도 틀렸고, 수사한 경찰도 틀렸으며, 수사한 경찰의 수사보고서를 결재한 팀장도 틀렸고, 이를 수사한 검사도 틀렸으며, 공판 검사도 틀렸다는 말입니다. 근데 심지어 이번에 소개할 사건은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온 사건이니까 1심의 판사도 틀렸다는 말입니다.
중세나 근세의 마녀 사냥은, 그 연원을 따져보면 마녀가 질병을 퍼뜨린다는 사람들의 공포나, 부유하지만 혼자 사는 여자를 마녀로 몰아 죽이면 그 재산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는 동기라도 있지만, 한국의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누군가를 유죄로 만든다고 하여도 득을 보는 것이 아니니까, 사실 항소심에서 무죄를 다투는 사람이 정말 억울한 사람일 가능성보다는 이미 수많은 법 전문가가 검토하고 또 검토한 사건을 다시 보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다투어도 이를 진지하고 관심 있게 들어줄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돈이 많은 사람은 몇 억 원이 넘는 수임료를 지급하고 항소심 재판부와 연줄이 닿는 변호사를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고, 돈이 없는 사람은 항소를 그냥 포기하기도 합니다.
근데 본 사건은, 가난한 개발도상국 출신의 저임금 종사자에다가, 불법체류자인 사람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맡은 변호사도 재판부와 어떤 인맥이 있던 것도 아닙니다. 가난한 불법체류자였으므로, 당연히 변호사에게 큰돈을 지불할 수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의 유죄 판결은, 항소심에서 무죄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사건의 요지는 이 사건 피고인이 홍대 클럽 근방에서 깨진 소주병으로 사람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는 것입니다.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구속되었습니다.
당 소는 항소심부터 진행하였는데 일단 보석을 신청하였습니다. 통상 불법체류자의 경우 도주 우려를 매우 높게 보아 보석 허가를 잘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원심 판결 자체의 부당성과, 피고인이 자발적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까지 온 사정, 피고인이 무죄를 적법하게 다투고자 사선 변호사까지 선임하고 돈을 지불하였으므로 굳이 도망갈 우려가 없는 점 등을 피력하여, 피고인은 불법체류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보석으로 구치소에서 꺼낼 수 있었습니다.
일단 구치소에서 사건에 대한 대응이 좀 더 용이하였습니다. 당시 현장을 방문하여 사건을 재구성한 이후, 당 소 변호사는 피고인이 무죄임을 확신하였고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대응하였습니다.
먼저 피고인을 체포한 경찰이 현장에 수십 개의 CCTV가 있었으며 피고인이 해당 CCTV를 확보해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를 확보하지 않은 점과, 목격자의 진술에 따라 피고인이 범인으로 지목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다수 사람을 비교하며 목격자를 지목시키는 중립적인 절차를 생략한 점, 현장 출동 경찰이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여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점을 강조하여 먼저 수사기관 수사의 부실한 점을 지목하였고,
또한 법정에 출석한 수사기관이 확보한 목격자를 심층 신문하여, 목격자가 목격한 때린 부위 및 범인의 복장이 당시 사진과 불일치하는 점, 현장에 이 사건 이외에도 다른 흉기 난동 사건이 한 건 더 있었던 점, 목격자가 국내에 그 구사자가 극히 소수인 외국어를 구사하므로 따라서 당시 현장에 있던 외국인들 중 피해자가 속한 특정 언어 집단 그룹과 원래 친분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던 점 등의 진술을 지득하였고, 최종적으로 현장 목격자로부터 자신이 잘못 보았을 가능성에 대한 시인 진술을 얻어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2년 전 한국을 떠난, 당시 현장을 목격한 외국인을 피고인 측 증인으로 소환하고, 그 유학생이 이 사건을 알게 된 제반 경위와 사정 등을 피력하여 재판부로 하여금 수사기관의 목격자가 아니라 피고인 측 목격자의 진술을 신빙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 중 검사가 해당 외국인과 피고인의 관계를 의심하는 질문을 하는 등 매우 치열한 신문 과정이 있었으나, 이미 고도로 숙련된 법률 전문가인 검사라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무죄라는 점을 덮을 수는 없는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피고인은 항소심을 뒤집고 무죄 판결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담당한 변호인의 소회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이해관계에 연루되지 않은, 법률전문가 다수의 심의를 이미 받은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항상 맞는 것은 아닙니다. 외국인이고 불법체류자라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수사기관이 의뢰인이 유죄라는 심증을 가지는 과정은 정말 듬성듬성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즉 한국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정밀한 수사를 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여전히 그렇지 않은 사건이 존재하며 이럴 경우 명백히 변호인의 역할이 지대하다는 것입니다. 그게 첫 번째 소회입니다.
두 번째 소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오류를 시정할 수 있는 자정능력이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사법질서가 그만큼 선진적이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지금도 해외의 많은 사법기관은 뇌물이나 인맥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외국 사람들의 경우 처음 변호사와 상담에서 다짜고짜 뇌물을 얼마 줘야 하냐고 묻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연히 법원은 논리와 증거만으로 판단해야 하지만, 정말 논리와 증거만으로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나라가 솔직히 몇 나라가 될까 의문입니다. 이 사건 의뢰인은 억울하게 판결 받아도 항변할 곳 하나 없는 불법체류자였고, 반면 이미 내려진 판단은 그 판단을 뒤집어야 하는 법조인들의 실은 같은 집단의 법조 선후배로서, 판단을 바꿔서라도 구제해주어야 하는 불법체류자 피고인보다 훨씬 관계가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무죄 판결을 깨는 항소인용이 가능한 나라는 ‘국뽕’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아마 10개 국가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솔직한 본 변호인의 소회입니다.